https://youtu.be/GfH4QL4VqJ0?si=HpgxV2Wjqxvbci94
Python: The Documentary | An origin story
This is the story of the world's most beloved programming language: Python. What began as a side project in Amsterdam during the 1990s became the software 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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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썬은 오늘날 인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컴퓨터가 있는 거의 모든 곳에 파이썬이 존재하고 심지어 화성에서도 사용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1, 2]. 특히 인공지능(AI) 분야에서 파이썬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1, 3]. 파이썬의 성공은 프로그래밍을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들었으며, 1~2시간 만에 프로그래밍 기초를 배우고 흥미로운 10~20줄의 코드를 작성할 수 있게 했습니다 [1, 2].
**파이썬의 기원: ABC 프로젝트 (1980년대 암스테르담)**
파이썬의 역사는 1980년대 암스테르담의 네덜란드 연구 시설 CWI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 CWI는 Algo 60, Algo 68과 같은 주요 프로그래밍 언어 개발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1]. 당시에는 컴퓨터가 매우 비쌌고 프로그래머는 저렴했기 때문에, 프로그래밍 언어는 컴퓨터 자원을 적게 소모하도록 설계되었으며, 프로그래밍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1]. Lombair Mutton은 예술가들에게 프로그래밍을 가르치려 했으나, 과학자나 괴짜들에게는 쉬운 개념들이 예술가들에게는 컴퓨터 하드웨어 지식 없이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1]. 이는 당시 사용 가능한 언어들이 너무 저수준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 이에 팀은 배우기 쉽고 가르치기 쉬우며 초보자도 지저분한 하드웨어 세부 사항 없이 프로그래밍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고, 그 결과 **ABC 프로젝트**가 탄생했습니다 [1]. 귀도 반 로섬(Guido van Rossum)은 ABC 프로젝트를 위해 고용되었고, 프로토타입을 완성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1]. 1985년 ABC가 출시되었으나,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전 세계에 알리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4]. 사람들은 플로피 디스크를 받기 위해 편지를 보내야 했고, 결국 ABC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도달했습니다 [4]. 결국 프로젝트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중단되었고, 귀도는 3년 반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것에 실망했습니다 [4].
**파이썬의 탄생: ABC의 교훈과 새로운 필요성**
ABC 프로젝트가 중단된 후, 귀도는 분산 운영 체제인 Amoeba 시스템 프로젝트로 옮겨 사용자 애플리케이션을 작성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4]. 그는 C 언어가 많은 유틸리티에 적합하지 않다고 느꼈고, ABC를 사용했다면 코드를 절반으로 줄이고 개발 시간을 몇 년에서 몇 주로 단축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4]. 그러나 ABC는 너무 추상적이어서 서버, 파일 시스템, 프로세스와 같은 운영 체제 수준의 작업에는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4]. 그는 C와 쉘 스크립트 사이의 간극을 메울 수 있는 언어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4]. 펄(Perl)은 프로그래밍 언어로 좋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파이썬은 펄의 대안으로도 만들어졌습니다 [4]. 그는 ABC 프로젝트에서 배운 원칙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를 설계하고 구축하기로 결심했습니다 [4]. **파이썬이 ABC로부터 가장 크게 빌려온 특징은 문장 그룹화를 위한 들여쓰기(indentation) 사용입니다** [4]. 몬티 파이튼(Monty Python)의 이름을 따서 파이썬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5].
**초기 개발과 오픈 소스 전환**
귀도는 인터프리터가 충분히 완성되었다고 확신했을 때 롬베어에게 파이썬을 보여주었습니다 [5]. 롬베어는 파이썬이 ABC와 유사하다는 것을 알아챘고, 명령줄 프롬프트까지 동일했습니다 [5]. 그는 파이썬의 대화형(interactive) 특성과 즉시 실행 가능성에 주목했으며, 기존 언어보다 재미있지만 느리다는 평가를 했습니다 [5]. Short와 Jack이라는 초기 사용자들은 파이썬 사용에 가장 적극적이었고, 버그를 찾고 확장할 기능들을 제안하며 개발에 기여했습니다 [5].
파이썬을 오픈 소스로 배포하기로 결정한 것은 주로 Jack의 아이디어였으며, CWI는 저작권 고지를 유지하는 조건으로 귀도가 파이썬을 전 세계에 배포하도록 허락했습니다 [5]. 아무도 파이썬이 이렇게 큰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5]. 당시에는 Usenet이 유일한 배포 채널이었으며, 소스 코드를 tarball로 묶고, 압축하고, ASCII 인코딩으로 변환한 다음,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게시해야 하는 매우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6]. 사용자들은 이 모든 조각을 다운로드하여 역순으로 다시 조합해야 했습니다 [6].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도가 작성한 매력적인 티저 덕분에 빠르게 이메일과 Usenet을 통해 피드백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6].
**성장하는 커뮤니티와 초기 채택**
존슨 우주 센터(Johnson Space Center)에서는 C++ 라이브러리 프로젝트를 제어하기 위한 스크립팅 언어를 찾다가 CWI에서 귀도의 파이썬 배포판을 발견했습니다 [6]. FTP로 다운로드하여 10분 만에 컴파일하고 실행할 수 있었다는 경험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6]. 20년 전 100만 달러짜리 컴퓨터가 오늘날의 랩톱보다 성능이 떨어졌을 정도로 컴퓨팅 환경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6]. 컴퓨터가 기계실에서 개인 책상으로 옮겨오고, 웹의 등장이 컴퓨팅 분야를 폭발적으로 성장시켰습니다 [6]. 인터넷이 유럽에 도입된 후 소프트웨어 배포가 훨씬 쉬워졌고, 파이썬은 서서히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6]. 곧 **매우 협력적이고 "큰 가족" 같은 파이썬 커뮤니티가 형성되었습니다** [6, 7].
**첫 파이썬 컨퍼런스 및 CNRI와의 협력**
1994년 11월 메릴랜드 주 가이더스버그에서 첫 파이썬 워크숍이 NIST의 창문 없는 정부 사무실에서 개최되었습니다 [7]. 약 20명이 참석한 이 워크숍은 파이썬 커뮤니티의 시작점으로 여겨집니다 [7].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교류하던 사람들과 직접 만나고, 귀도와 만나 언어 기능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안하며 즉석에서 채택되기도 했습니다 [7]. 배리 워소(Barry Warsaw)는 1994년 CNRI(Corporation for National Research Initiatives)에 합류하여 네트워크를 돌아다니는 소프트웨어 에이전트를 개발하고 있었는데, NIST의 친구로부터 귀도의 언어에 대한 워크숍 소식을 듣고 참석하여 파이썬과 귀도에게 매료되었습니다 [7, 8]. CNRI는 정보 인프라를 홍보하고 연구를 장려하며 파일럿 프로젝트를 구축하여 대중에게 공개하는 것을 목표로 했고, 당시에 존재하던 전통적인 언어보다 사용하기 쉬운 언어가 필요했습니다 [8].
귀도는 CNRI에 고용되었는데, 그의 중요한 조건은 **파이썬 언어 자체를 개발하는 데 자신의 시간의 상당 부분, 가능하면 절반 이상을 할애하는 것이었습니다** [8]. CNRI에서의 파이썬 작업은 "조금은 전복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파이썬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8]. 귀도는 python.org를 구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python.com 도메인은 다른 사람이 먼저 차지하여 한동안 사람들에게 python.org로 접속하도록 경고해야 했습니다 [9]. CNRI는 초기 파이썬 개발과 인프라 구축을 위한 완벽한 보금자리였습니다 [9].
**BDFL과 파이썬의 철학**
파이썬 소프트웨어 활동을 위한 사용자 그룹 또는 소프트웨어 조직을 논의하는 회의에서, 귀도를 **"자비로운 종신 독재자(Benevolent Dictator for Life, BDFL)"**라고 부르자는 제안이 나왔고, 이는 인터넷 밈이자 소프트웨어 밈이 되었습니다 [9]. 귀도는 언어의 창시자이자 최종 결정권자로서, 모든 아이디어를 환영하되 언어에 추가할 아이디어를 직접 선택하는 스타일을 개발했습니다 [9].
당시 파이썬은 프로그래머가 아닌 과학자들에게도 매력적이었습니다 [9]. 위성 데이터 처리나 의료 영상 데이터 처리와 같은 과학 분야에서 펄(Perl)을 사용하던 사람들은 파이썬의 가독성(readability)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9, 10]. 귀도는 과학자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비전통적 프로그래머의 요구에 개방적이었습니다 [10]. 파이썬은 오픈 소스였기 때문에 초기에 큰 이점이 있었습니다 [10]. 2000년대 초반에는 오픈 소스 생태계와 자바(Java)처럼 유료인 생태계로 나뉘는 경향이 있었는데, MATLAB과 같은 유료 소프트웨어와 달리 파이썬은 코드를 공유할 때 라이선스를 구매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습니다 [10]. 이로 인해 파이썬은 상업 프로젝트에서도 자유롭게 사용될 수 있었고, 블렌더(Blender)와 같은 소프트웨어에서도 파이썬 스크립팅 언어를 채택했습니다 [10, 11].
**파이썬 커뮤니티 문화와 "파이썬의 선(Zen of Python)"**
파이썬 커뮤니티는 즐겁고 열정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고, 몬티 파이튼에서 이름을 따온 것에서도 유머 감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11]. 팀 피터스(Tim Peters)는 초기 파이썬 개발의 중요한 기여자이자 멘토였으며, 귀도의 의도를 잘 전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11]. 그는 1999년 Usenet 게시물에 파이썬의 철학을 담은 **"파이썬의 선(Zen of Python)"**이라는 시를 게시했습니다 [11, 12].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2]:
* 아름다운 것이 추한 것보다 낫다.
* 명시적인 것이 암시적인 것보다 낫다.
* 간단한 것이 복잡한 것보다 낫다.
* 복잡한 것이 난해한 것보다 낫다.
* 평평한 것이 중첩된 것보다 낫다.
* 성긴 것이 밀집된 것보다 낫다.
* 가독성은 중요하다.
* 특별한 경우는 규칙을 깨뜨릴 만큼 특별하지 않다. (단, 실용성이 순수성을 이긴다.)
* 오류는 절대 조용히 넘어가지 않아야 한다. (명시적으로 침묵시키지 않는 한)
* 모호함에 직면했을 때는 추측하려는 유혹을 거부하라.
* 그것을 하는 한 가지, 그리고 가급적이면 오직 한 가지의 명백한 방법이 있어야 한다. (펄의 철학 "하나 이상의 방법이 있다"와 대조)
* 지금이 절대 안 하는 것보다 낫다. (하지만 지금 당장 안 하는 것이 지금보다 나은 경우도 많다.)
* 구현하기 어렵다면 나쁜 아이디어다.
* 구현하기 쉽다면 좋은 아이디어일 수 있다.
* 네임스페이스는 정말 훌륭한 아이디어다. 더 많이 만들자!
이 시는 파이썬의 디자인 철학을 명확히 보여주며, "import this" 명령을 통해 파이썬 인터프리터 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12].
**닷컴 버블과 파이썬의 위기 (BeOpen 및 Digital Creations)**
2000년대 초, 닷컴 버블이 한창일 때 귀도는 CNRI를 떠나 BeOpen이라는 스타트업에 합류했습니다 [12]. 이 시기에 파이썬 2가 개발 및 출시되었으나, BeOpen은 약 1년 만에 재정난으로 무너졌습니다 [13]. 이는 파이썬에게 큰 위기였으며, 파이썬 개발자들이 뿔뿔이 흩어졌다면 파이썬은 생존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13].
이때 Digital Creations(나중에 Zope로 이름 변경)라는 회사가 구원 투수로 나섰습니다 [13]. Zope는 파이썬 위에 구축된 대규모 상용 애플리케이션 서버였기 때문에 파이썬의 생존이 Zope에게도 중요했습니다 [13]. 그들은 파이썬 팀 전체를 고용하여 파이썬의 미래를 확보하고 팀이 해체되지 않도록 했습니다 [13]. 이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운 좋은 구출(incredibly lucky rescue)"이었다고 회상됩니다 [13].
**파이썬 소프트웨어 재단 (PSF)의 설립**
BeOpen 사건을 통해 파이썬의 소유권을 특정 회사가 차지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졌습니다 [13, 14]. 이에 따라 어떤 회사나 그들의 변덕에 얽매이지 않고 파이썬 사용자들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독립적인 조직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습니다 [14]. 그 결과 **파이썬 소프트웨어 재단(Python Software Foundation, PSF)**이 설립되었으며, 이는 "첫날부터 성공"으로 평가됩니다 [13, 14]. PSF는 파이썬의 독립적인 거버넌스와 발전을 보장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14].
**PyCon과 커뮤니티의 힘**
PyCon과 같은 파이썬 컨퍼런스는 커뮤니티의 활발한 소통과 성장을 보여주는 장이었습니다 [14]. "언어를 위해 왔지만, 커뮤니티 때문에 머물렀다"는 말은 파이썬의 핵심 정신을 잘 나타냅니다 [14]. 팀 오라일리(Tim O'Reilly)와 같은 출판업자들은 파이썬 책의 판매량이 엄청나다는 것을 보고 파이썬 사용자 커뮤니티가 예상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귀도에게 알려주었습니다 [15].
**웹 개발 및 데이터 과학 분야에서의 폭발적인 성장**
월드와이드 웹의 등장과 함께 파이썬은 웹 페이지뿐만 아니라 웹 서버 및 서비스를 구축하는 강력한 플랫폼이 되었습니다 [15]. 드롭박스(Dropbox)는 파이썬으로 제품을 구축한 초기 회사 중 하나로 수백만 명의 사용자를 확보했습니다 [15]. 파이썬은 전통적으로 백엔드 스크립팅이나 학술/과학 분야에서 사용되는 것으로 여겨졌으나, 드롭박스는 파이썬이 수백만 명에게 배포되는 프로덕션 데스크톱 소프트웨어에도 사용될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15]. 파이썬은 고수준 언어로서 코딩 속도가 빠르다는 장점 덕분에, 자바(Java), C++, 펄(Perl)을 사용하는 다른 회사들과 경쟁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15, 16].
2009년~2010년경부터 데이터 과학이 부상하면서 파이썬은 이 분야에서 핵심적인 언어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6]. 초기에는 "데이터 과학"이라는 용어가 없었지만, 예측 분석, 모델링, 데이터 처리와 같은 작업에 파이썬이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16]. 하둡(Hadoop), 빅데이터(Big Data), 스파크(Spark) 시대에 자바(Java)가 주로 사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JP모건과 같은 대규모 금융 회사들도 비즈니스 데이터 처리에 파이썬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16]. 이는 파이썬이 단순히 저렴하고 무료인 대안이 아니라, 혁신적이고 독특한 가치를 제공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16].
**아나콘다(Anaconda)**는 이러한 데이터 과학 분야의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6, 17]. Anaconda는 NumPy와 Pandas 같은 복잡한 과학 라이브러리들을 쉽게 설치할 수 있는 파이썬 배포판을 만들었고, 이는 C++와 같은 저수준 언어로 백엔드가 구현된 데이터 라이브러리들의 설치 및 통합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16, 17]. 아나콘다의 기여는 파이썬을 "매우 인기 있게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됩니다 [17]. R과 경쟁하면서 파이썬의 데이터 분석 및 플로팅 라이브러리들이 발전했고, 파이썬이 데이터 수집부터 분석까지 전체 데이터 파이프라인을 다룰 수 있는 반면 R은 데이터 분석에만 특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파이썬의 우위가 확립되었습니다 [17].
**귀도 반 로섬의 구글 및 드롭박스 재직**
귀도 반 로섬은 구글에서 근무하다가 드롭박스 팀에 합류했습니다 [17, 18]. 드롭박스 팀에 합류한 것은 모두에게 매우 흥미로운 사건이었으며, 그는 드롭박스에서 7년간 근무하며 구글 재직 기간보다 파이썬에 더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평가됩니다 [18]. 그는 겸손하고 호기심 많으며 친근한 태도로 팀원들에게 훌륭한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18].
**파이썬 3 전환: 거대한 도전**
파이썬은 항상 변화하는 언어였지만, **파이썬 3.0 출시(2007년 12월)는 가장 큰 도전이자 논란이었습니다** [18]. 개발팀은 사용자들에게 5년 정도의 전환 기간을 주면 충분할 것이라고 낙관했으나, 커뮤니티는 이에 강하게 저항했습니다 [19]. 기존 파이썬 2 코드가 잘 작동하는데 굳이 파이썬 3로 재작성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파이썬 2와 파이썬 3를 혼합하여 사용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19]. 이는 과거와 달리 "하향식(top-down)" 결정으로 느껴졌으며, 기존 사용자들의 고통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19].
가장 논란이 많았던 변화는 **유니코드(Unicode) 처리 방식 변경**이었습니다 [19]. 파이썬 3에서는 모든 문자열이 유니코드로 처리되고, 바이트(bytes)는 'b' 접두사를 사용해야 했는데, 이는 HTTP 데이터나 쿠키 데이터처럼 바이트와 유니코드가 혼합된 데이터를 처리할 때 매우 번거로웠습니다 [19, 20]. 초기에는 파이썬 2 코드를 파이썬 3로 자동 변환하는 도구도 없었습니다 [20]. 아민(Amen)과 같은 커뮤니티의 저명한 인사들은 파이썬 3의 변화가 기존 생태계를 망칠 수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20]. 드롭박스와 같은 대규모 기업들은 수백만 줄에 달하는 파이썬 2 코드를 파이썬 3로 마이그레이션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20]. 벤자민 피터슨(Benjamin Peterson)은 10년 동안 파이썬 2.7 릴리스 매니저를 맡아 파이썬 2와 파이썬 3 버전이 병행되는 긴 전환 기간을 관리해야 했습니다 [20].
**파이썬 3 전환의 성공과 교훈**
커뮤니티의 노력으로 `lib2to3`와 `six`와 같은 마이그레이션 도구들이 개발되었고, 언어 자체도 이전 버전과의 호환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했습니다 [21]. 유니코드 문자열에 'U' 접두사를 다시 도입하는 등의 변화로 파이썬 2와 3를 모두 지원하는 통합 코드베이스 작성이 쉬워졌습니다 [21]. 파이썬 2.8은 출시되지 않을 것이며 파이썬 3가 미래라는 강력한 선언이 있었습니다 [21]. 파이썬 3.4는 흥미로운 기능들을 추가했고, **파이썬 3.5는 파이썬 3의 광범위한 채택을 이끈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21].
인스타그램(Instagram)은 파이썬 3로의 성공적인 마이그레이션 경험(9~10개월 소요, 성능 향상, 타입 힌팅, `async.io` 활용)을 공유하며 다른 기업들에게 큰 자신감을 불어넣었습니다 [21, 22]. 이는 파이썬 3의 성공을 입증하는 계기가 되었고, 많은 기업들이 파이썬 3로 전환하는 데 필요한 내부 지원을 얻는 데 기여했습니다 [22]. 결국 파이썬 2.7의 보안 지원이 2020년에 종료되면서, 보안 문제에 대한 우려가 파이썬 3로의 최종 전환을 가속화했습니다 [22]. 이 과정은 예상보다 훨씬 오래 걸린 10년이 넘는 과정이었으며, 오늘날 파이썬은 당시보다 훨씬 커져서 이러한 대규모 전환을 다시 겪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평가됩니다 [22]. 귀도는 파이썬 4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며, 커뮤니티에 대한 "빚"이라고 생각했던 파이썬 3 전환의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22].
**BDFL 사임과 새로운 거버넌스 모델**
파이썬 언어의 변화, 특히 새로운 문법은 항상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23]. **"바다코끼리 연산자(Walrus operator)"라고 불리는 PEP 572는 가장 논쟁적인 언어 변경 중 하나였습니다** [24]. 이는 변수에 값을 할당할 수 없었던 위치에서 할당을 가능하게 하는 문법 변경이었는데, 일부는 "파이써닉하지 않다"고 비판했고, 다른 일부는 특정 사용 사례에서 매우 유용하다고 평가했습니다 [24]. 귀도는 BDFL로서 PEP 572를 수용하기로 결정했으나, 이 결정에 대한 격렬한 비판과 공격에 시달렸습니다 [24, 25].
결국 **귀도는 2018년 BDFL 자리에서 사임했습니다** [25]. 그는 더 이상 PEP를 위해 싸우고 싶지 않았고, 자신의 결정에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는 것에 지쳐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25]. 그의 사임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사건이었고, 파이썬 커뮤니티는 BDFL 모델로 운영되던 역사상 처음으로 불확실성에 직면했습니다 [25].
새로운 의사 결정 방식을 결정하는 과정은 매우 스트레스가 많았고, 수백 명의 핵심 개발자와 수천 명의 온라인 사용자, 수백만 명의 커뮤니티 회원, 그리고 수십억 달러 규모의 소프트웨어가 파이썬 위에서 운영되고 있다는 부담감에 짓눌렸습니다 [26]. 다양한 투표 방식에 대한 격렬한 논쟁 끝에, **5인으로 구성된 운영 위원회(Steering Council) 모델이 채택되었습니다** [26]. 귀도 자신도 연속성을 제공하기 위해 첫 운영 위원회에 참여했으며, 다음 해에는 다른 강력한 후보들이 많아 스스로 물러났습니다 [26]. 커뮤니티 내부에서 자발적으로 새로운 리더십이 탄생했기 때문에, 새로운 거버넌스 모델은 커뮤니티로부터 정당성을 인정받고 잘 작동하고 있습니다 [2].
**다양성과 포용성 증진 노력**
"Python is for girls"라는 티셔츠를 받은 사건을 계기로 파이썬 커뮤니티는 여성 참여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22, 27]. 제시카 맥켈러(Jessica McKellar)는 PyCon 공동 주최자로서 여성 연사 비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고, 2011년 1%에 불과했던 여성 연사 비율은 2016년 40%까지 크게 증가했습니다 [27]. 언어 정상 회의에 여성이 단 한 명도 없었고 핵심 개발자 중 여성도 없다는 문제 의식 속에, 귀도는 최소 두 명의 여성 핵심 개발자를 양성하겠다고 선언하며 직접 멘토링을 자청했습니다 [27].
마리에타(Mariatta)는 기술 분야에서 여성 롤모델이 부족했던 자신의 경험을 극복하고, 귀도의 멘토링을 받아 파이썬 커뮤니티에 기여하기 시작했습니다 [28]. 처음에는 공개적으로 질문하는 것을 두려워했지만, 커뮤니티는 항상 친절하게 도움을 주었고 그녀는 "멍청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29]. 마리에타는 파이썬 핵심 개발자(Python core developer)가 된 최초의 여성이 되었고, 이후 다른 여성들에게 멘토링의 중요성과 기회가 누구에게나 열려 있음을 알리는 데 기여했습니다 [29]. 귀도의 리더십과 커뮤니티의 노력 덕분에 파이썬은 다양성과 포용성을 증진시키는 데 큰 진전을 이루었으며, 이는 다른 커뮤니티에 영감을 주는 모범 사례로 평가됩니다 [3, 29].
**지속적인 성장과 미래**
파이썬은 과학 분야에서 계속 성장하며, 텐서플로우(TensorFlow), 파이토치(PyTorch), SciPy, NumPy, Numba, Pandas와 같은 머신러닝 및 데이터 과학 패키지들을 통해 더욱 강력한 플랫폼이 되었습니다 [3]. 이러한 도구들의 백엔드는 C나 포트란(Fortran)과 같은 더 빠른 언어로 구현되어 있지만, 파이썬 API를 통해 AI/ML 전문가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3]. 파이썬은 이제 단순한 스크립팅 언어를 넘어 AI/ML 분야의 "비즈니스 동력(business driver)"이 되었으며, 전문 프로그래머가 아닌 사람들도 소프트웨어를 통해 작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3].
오늘날 대규모 언어 모델(LLM)에게 코드 생성을 요청하면 프런트엔드는 자바스크립트(JavaScript), 백엔드 데이터 분석은 파이썬을 생성할 정도로 파이썬은 미래 컴퓨팅의 중요한 부분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습니다 [3, 23]. 파이썬은 전 세계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교육 과정에 포함될 정도로 접근성을 높였으며, 퍼서비어런스(Perseverance) 로버의 낙하산 처리 스크립팅 언어로 사용되어 화성에도 도달했습니다 [2]. 파이썬은 30년 후에도 포트란(Fortran)이나 C, C++처럼 계속 사용될 중요한 언어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30]. 끊임없이 진화하며 변화에 적응하는 커뮤니티의 능력은 파이썬의 미래를 더욱 밝게 만들고 있습니다 [2].